글램핑을 다녀온 후 바로 다음날 템플 스테이 체험을 했다. 12월 중순부터는 일을 시작해야 했고, 캐나다에서 귀국한지 이제 2개월 좀 지난 시점,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걸 몰아서 하는 기분? 어려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던 내게 절이란 너무 생소했고 불교는 어쩌면 은연중 거부감이 드는 종교에 가까웠다. 천주교에서는 종교 대통합이라 해서 기독교든 불교든 딱히 배척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아직까지 개신교 (기독교)는 타 종교와 많은 거리를 둔다.
각설하고, 처음 템플 스테이를 알아보며 알게 된 사실은 인당 6 - 8만 원 사이에 1박부터 장박까지 가능하고 유형은 두 가지로 체험형과 휴식형이 있다. 체험형은 스님과 함께 여러 체험을 하면서 불교를 제대로 느껴보는 형식, 휴식형은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을 위한 리프레시를 중점으로 둔 방목형 프로그램이다.
불교라 하면 절! 그중에서도 유명한 건 백팔배. 일단 나는 종교적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교리 자체에 대한 열의도 없어서 리프레시를 중점으로 둔 휴식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수진사는 불교에 대해 전무한 일반인도 알차게 즐기고 가볍게 체험할 있도록 복합적으로 휴식형 프로그램을 짜 놓았다. 휴식도 하고 체험도 한다? 나와 짝꿍에게 딱 맞는 일정일 것 같아서 수진사로 출발.
절이라고는 초,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갔던 아득한 기억뿐. 처음 수진사를 방문했을 때 인상은 도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금장의 장식과 장엄한 기와가 이질적이라는 것. 그럼에도 나무 사이사이 목패와 촛불, 잘 다듬어 놓은 스님이 지나가시는 길목 등이 운치가 있었다. 전통과 현대를 합한 느낌?
절에 간다고 해서 덜걱 등산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은 쓸모 없는 기우였다. 모든 게 다 최첨단. 예불을 드리러 갈 때조차 건물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버튼만 꾹 누르면 순간이동 되더라. 각자 배정 받은 방도 침대, 냉장고, 드라이기, 와이파이, 온수 탱크까지 안락 그자체.
첫날 프로그램은 염주 만들기와 연등 만들기가 메인이었다. 스님께서 방을 안내해 주고 각자 조끼와 바지를 갈아입으면 메인 홀로 모여서 종이컵에 담긴 염주를 한알한알 엮어 팔찌를 만든다. 팔찌를 차고 수진사를 걸으며 불교에 대한 간단한 교리와 절하는 예법, 탑에 대한 의미 등 사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다 함께 오색빛깔 연등을 만들었다. 풀을 손끝에 묻혀 연꽃 한지를 비비고 꼬아서 잎을 피우는 정성이 엄청 들어가는 작업. 마지막에 모두 함께 달칵! 불을 켜니 너무 예뻤다. 이른 밤 하지만 겨울이라 컴컴했던 공양 시간이 되어 절밥을 먹었다. 아주 인상적이었던 건 절밥이 생각보다 너무너무 맛있었다는 사실. 수진사에서 자부하는 호박 전과 배추 전이 기가막혔다.
하루가 저물고 지오스님께서 새벽 예불을 참석해보라 권해주셨지만 웬걸. 눈 떠보니 9시가 넘어있었다. 심지어 아침 공양시간도 지나 밥도 못 먹고 부스스한 머리로 스님과 담화 시간인 티타임에나 겨우 참석.
양갱도 달달하고 부드러운 차맛도 훌륭했다. 스님과 인사 후 템플 스테이 퇴실을 했으나 마지막으로 아쉬우니 사찰을 더 구경하자는 마음으로 걷다 일요일 정식 예불을 준비하는 다른 스님에게 걸려 2시간짜리 예불까지 정식으로 드렸다. 정신 차려보니 오후 1시쯤. 기도를 하러 절을 찾으신 다른 분들과 제대로 불교를 맛보고 점심 공양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서야, 남들보다 길었던 템플 스테이 체험을 마쳤다. 전반적으로 알차고 값졌던 경험. 부모님과, 혹은 친구들과 더 나아가 아이와도 함께 특별한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하는 이색 체험. 한 번쯤은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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